결함이 곧 미덕인 기계, 그리고 집중이라는 단어의 물리적 구현
노트북 앞에 앉을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쓰려고 열었는데 이메일을 확인하고, 유튜브를 켜고, 인스타그램을 넘기다가 20분이 지나 있다.
글을 쓰는 도구가 동시에 글쓰기를 방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노트북은 원래 그렇게 설계됐다.
Freewrite Traveler는 그 설계를 거부한다. 이 기계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쓰는 것.
기능이 없다는 것이 기능이다
Traveler는 Astrohaus가 만든 E Ink 전자 타자기다. 클램쉘 형태로 접히며 펼치면 풀사이즈 키보드와 6인치 E Ink 스크린이 나타난다. 무게 680g(1.5파운드). 가방 안에 들어가는 크기다.
인터넷에 연결된다. 하지만 문서를 클라우드로 동기화하기 위해서만 연결된다. 브라우저가 없다. 이메일 앱이 없다. 알림이 없다. 복사 붙여넣기조차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이핑뿐이다.
PCWorld 리뷰어의 표현이 이 기계를 가장 잘 설명한다.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싫다. 하지만 오늘 5,000단어를 썼고 피곤하지 않다.”
E Ink — 눈이 피로하지 않은 이유

화면은 E Ink 패널이다. 킨들에 쓰이는 그 기술. 블루라이트를 내지 않고, 직사광선에서도 읽을 수 있고, 종이 위의 잉크처럼 보인다.
장시간 작업해도 눈이 피로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신 백라이트가 없다. 어두운 곳에서는 쓸 수 없다. 이것도 결함인지 미덕인지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화면이 작아서 전체 문서가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 리뷰어들은 이것이 오히려 좋았다고 말한다. 앞에서 쓴 것을 자꾸 돌아보며 수정하고 싶은 충동 — 그 유혹이 사라진다.
초고는 초고로, 쓰고 나중에 편집하라는 Freewrite의 철학이 화면 크기에서도 구현된다.
Postbox — 쓰면 자동으로 저장된다

저장 버튼이 없다. 자동 저장이다. Wi-Fi에 연결되면 Postbox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자동 동기화된다. Postbox에서 구글 드라이브, 드롭박스, 원드라이브, 에버노트로 내보내기가 가능하다.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는 USB 케이블로 직접 전송할 수도 있다.
배터리는 4주. 한 달간 충전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현장을 오가는 사람에게, 비행기 안에서, 카페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어느 순간에도 열면 된다.
솔직한 단점들
가격이 먼저다. $499~$550. E Ink 타자기에 50만 원대. 스펙만 보면 말이 안 된다. 그 돈이면 크롬북이나 아이패드를 살 수 있다.
백라이트가 없어서 어두운 곳에서 쓸 수 없다. 화면 응답 속도가 느리다. 오타를 수정하는 게 번거롭다 — 이것도 설계 의도이긴 하지만.
플라스틱 바디는 처음 받았을 때 장난감 같은 인상을 준다. 기능 면에서 일반 노트북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 기계를 오해하는 방식이다.
에디터’s 노트
임선우 작가는 썼다. “나름이라는 단어는 되뇔수록 어쩐지 용기가 생긴다. 나는 나름대로 살 것이고 나름대로 쓸 것이다.”
Freewrite Traveler는 그 ‘나름대로 쓰는’ 행위를 위한 기계다. 알고리즘의 방해도, 알림의 유혹도 없이, 지금 이 순간 써야 할 것을 쓰는 것. 그것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
오카리나 한글화를 했던 사람이, 소니 연재와 마쓰시타 연재를 써온 사람이 이 기계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운 사람에게, 이 기계는 그 즐거움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준다.
Freewrite Traveler | getfreewrite.com | $499~$550
화면: 6인치 E Ink (블루라이트 없음 · 백라이트 없음) | 135도 각도 조절
키보드: 풀사이즈 시저 스위치 | 무게: 약 680g
배터리: 최대 4주 | 저장: 자동 클라우드(Postbox) · USB 전송
싱크: 구글 드라이브 · 드롭박스 · 원드라이브 · 에버노트
폴더: 3개 | 언어: QWERTY · QWERTZ · AZERTY · DVORAK 등
제조: Astrohaus | 보증: 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