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서스펜션을 연구하던 엔지니어가 있었다. 1929년, 그가 다니던 회사가 파산했다. 조지 카워딘은 정원 창고에 틀어박혀 오래된 집착을 꺼냈다. 스프링과 레버. 힘의 균형. 어떤 각도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메커니즘.
그게 램프가 될 거라고는 본인도 몰랐다.
실수에서 태어난 것

카워딘이 만들려던 건 조명이 아니었다. 차량 서스펜션에 쓸 새로운 스프링 방식이었다. 그런데 1932년, 스프링과 크랭크와 레버의 조합이 완성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건 다른 데 써야 한다고.
손끝으로 살짝 밀면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고, 손을 떼면 그 자리에 머문다. 마치 관절처럼. 인간의 팔이 공간 속에서 정지하는 원리와 같았다.
4개의 스프링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램프 Model 1208이 세상에 나왔다. 산업용이었다. 수요는 금세 카워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이름을 빼앗긴 발명가

카워딘은 램프 이름을 Equipoise라고 부르려 했다. 상표청이 거절했다. 이미 존재하는 단어라는 이유였다. 대신 붙여진 이름이 Anglepoise. 각도와 균형. 제품의 본질을 담은 이름이 우연히 만들어졌다.
1934년 카워딘은 스프링 제조사 Herbert Terry & Sons에 라이선스를 넘겼다. 이듬해 3개의 스프링으로 재설계된 가정용 버전이 나왔다. Original 1227. 지금도 생산 중인, 그 램프다.
전쟁을 버틴 램프
2차 세계대전 중 Anglepoise는 영국 공군 폭격기 내부에 설치됐다. 항법사 테이블을 비추는 용도였다. 나침반과의 간섭을 막기 위해 모든 부품이 비자성 소재로 만들어진 특수 버전이었다.
1985년, 스코틀랜드 네스 호수에서 2차대전 당시 추락한 폭격기가 인양됐다. 40년 가까이 수중에 있던 Anglepoise에 배터리를 넣었더니 불이 들어왔다.
좋은 물건은 좋은 사람에게 가면 계속 제 역할을 한다. 때로는 호수 바닥에서도.
디자인이 아니라 물리학

Anglepoise가 9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건 스타일이 아니라 원리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스프링의 장력이 팔의 무게를 정확히 상쇄한다. 어느 위치에서든 힘이 균형을 이룬다. 클램프도, 나사도, 마찰도 없다. 손가락 하나면 빛의 방향이 바뀐다.
숫자보다 원리가 먼저 말한다. 이 램프 앞에서 스펙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켄네스 그레인지, 폴 스미스, 그리고 계속되는 현재

2003년 영국 산업디자인의 거장 케네스 그레인지가 Anglepoise의 디자인 디렉터로 합류했다. 그는 켄우드 믹서와 인터시티 125 열차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가 내놓은 Type 3, Type 75는 Original 1227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의 조명 환경에 맞게 재해석됐다.
폴 스미스, 마거릿 하웰과의 컬래버레이션도 이어졌다. 색이 입혀지고 소재가 달라지고 크기가 바뀌어도 — 스프링의 원리는 1932년 그대로다.
이것은 조명을 사는 게 아니다. 1932년 정원 창고에서 태어난 물리학을 사는 것이다.
에디터’s 노트
Anglepoise Original 1227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게 아직도 이렇게 생겼지”였다. 보통 그 질문의 답은 두 가지다. 변할 이유가 없거나, 변할 수가 없거나. Anglepoise는 둘 다다. 스프링 세 개가 만드는 균형은 90년이 지나도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것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 Brand | Anglepoise | Designer | George Carwardine | Year | 1932 | Origin | England, UK | Current Line | Original 1227 | Type 75 | Type 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