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잊혀진 디지털 레인지파인더, 그리고 CCD가 남긴 색
먼저 솔직하게 말하겠다. R-D1s는 지금 당장 쓰라고 권하기 어려운 카메라다. 6.1MP. ISO 1600 상한. 20년 된 전자 부품. 중고 시장에서 수십만 원을 내고 샀는데 셔터가 말을 듣지 않아도 수리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 카메라를 사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 카메라를 꺼내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 카메라 시장이 이상하게 뜨겁다. 후지 X100VI 품절, X-Pro3 중고가 상승, 리코 GR IIIx 웨이팅. 레인지파인더 스타일, 필름 감성, 다이얼이 있는 카메라들이 다시 유행의 정점에 섰다. 그런데 후지 X100과 X-Pro 시리즈는 정확하게 말하면 레인지파인더가 아니다. 광학 뷰파인더와 EVF를 오가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진짜 레인지파인더 포커싱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레인지파인더는 라이카 M 시리즈밖에 없는가.
아니다. 앱손(Epson)이 있었다.
앱손은 프린터 회사다. 잉크젯 프린터, 스캐너, 프로젝터. 그 회사가 2004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내놨다. R-D1. R-D1s는 2006년에 나온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RAW+JPEG 동시 저장, Adobe RGB, 퀵뷰 기능이 추가됐다. 하드웨어는 R-D1과 동일하다.
이 카메라의 탄생에는 코시나(Cosina)가 있었다. 포크트렌더 베사(Voigtländer Bessa) 바디를 만드는 일본 회사. 코시나가 바디와 레인지파인더 메커니즘을 제공했고, 앱손이 센서와 이미징 시스템을 얹었다. 베사 R2 바디 기반이었기 때문에 라이카 M 마운트를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반세기가 쌓인 M 마운트 렌즈군 전체가 이 카메라에 달렸다.
뷰파인더는 1:1 배율 순수 광학식 레인지파인더다. 뷰파인더 안의 이중상을 맞춰 초점을 잡는다. 후지 X-Pro 시리즈처럼 EVF와 OVF를 오가는 방식이 아니다. 상단에는 아날로그 다이얼 세 개 — 배터리 잔량, 화이트 밸런스, 남은 촬영 컷 수. 세이코(Seiko, 앱손의 모회사)가 만든 다이얼이다. 셔터를 누른 뒤 필름 와인더처럼 생긴 레버를 돌려야 다음 촬영이 된다. 디지털 카메라인데 필름 카메라의 동작이 살아있다.
CCD가 만드는 색
R-D1s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센서의 색감이다.
이 카메라의 6.1MP APS-C CCD 센서는 니콘 D100과 같은 소니제 CCD다. 특별히 고급스러운 센서가 아니다. 그런데 RAW 파일을 라이트룸에서 현상하면 독특한 결과물이 나온다. 색조가 풍부하고 채도가 잘 살아있으며, 전체적으로 따뜻한 토널리티를 가진다.
CCD 센서는 현재 주류인 CMOS와 빛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CMOS가 각 픽셀에서 독립적으로 신호를 처리한다면, CCD는 모든 픽셀의 전하를 순차적으로 읽어낸다. 이 구조적 차이가 색 재현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고ISO에서 노이즈 특성도 다르다 — CMOS의 디지털 노이즈와 달리 CCD의 노이즈는 필름의 그레인과 조금 더 비슷한 결을 가진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CCD 때문인지, 렌즈 때문인지, 이미징 프로세서 때문인지는 분리하기 어렵다. 같은 CCD를 쓴 니콘 D100으로는 아무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라이카 M 마운트 렌즈들의 독특한 광학 설계가 더해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 R-D1s로 찍은 사진은 같은 시대 다른 디지털 카메라들과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지금의 필름 감성 유행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래서 사야 하나
다시 솔직해질 차례다. 90% 이상의 촬영자에게 이 카메라는 실용적인 선택이 아니다. 6MP 해상도, ISO 1600 상한, 오래된 전자 부품, 수리 접근성 문제 등등
그런데 라이카 M 마운트 렌즈를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라이카 M11이 수천만 원이고 중고 M9도 만만치 않은 시장에서, 그 렌즈들을 진짜 광학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에 달아볼 수 있는 선택지로서 R-D1s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일부러 CCD의 색감을 원하는 사람, 필름 와인더 레버의 리듬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 이 카메라가 줄 수 있는 경험은 스펙 시트가 설명하지 못한다.
에디터’s 노트
앱손이라는 이름이 카메라 위에 없었다면,
이 물건은 전설이 됐을 것이다. 보이그랜더는 이름이었다면, 혹은 라이카가 같은 기술로 먼저 내놨다면. 역사는 종종 가장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예쁜 이름을 가진 것을 기억한다.
레인지파인더 감성 카메라가 다시 유행하는 지금, 그 유행의 뿌리 어딘가에 이 카메라가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Epson R-D1s | 2006년 출시 | 생산 중단
센서: 6.1MP APS-C CCD | 마운트: 라이카 M 마운트
뷰파인더: 광학 레인지파인더 1:1 배율 | ISO: 200~1600
셔터: 1~1/2000초 | 무게: 560g | 개발: 앱손 + 코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