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이 전성시대에 다시 도전하는 PEN

올림푸스 시절 빛을 못 본 PEN이, OM 시스템으로 돌아온 이유

지금은 컴팩트 카메라의 시대다. 몇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다 삼킨 줄 알았던 이 시장이, 지금은 가장 뜨겁다. 후지필름 X100 시리즈는 없어서 못 팔고, 리코 GR은 중고가가 정가를 넘는다. 파나소닉도 명작 LX100의 계보를 잇는 루믹스 L10을 올해 6월에 내놓으며 이 흐름에 합류했다. 사람들은 다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찍는 맛이 있는 카메라를 원한다.

바로 이 시점에, PEN이 돌아왔다.

2026년 9월 9일, OM 시스템이 새 PEN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부활에는 사연이 있다. PEN은 원래 빛나야 했지만, 정작 올림푸스 시절엔 그 빛을 온전히 보지 못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PEN이라는 유서 깊은 이름

PEN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푸스가 만든 오리지널 PEN은 일본 최초의 하프프레임 필름 카메라였다. 필름 한 컷을 반으로 나눠 두 배로 찍는, 작고 경제적인 카메라. 이름처럼 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듯 카메라를 늘 지니고 다니자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 정신은 디지털 시대로 이어졌다. 2009년 디지털 PEN이 나왔고, 2016년에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작 PEN-F가 등장했다. 다이얼이 가득한 클래식한 외관,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 PEN-F는 컴팩트 카메라가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물건이었다. 디자인만으로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올림푸스는 왜 힘을 못 썼나

PEN은 좋은 카메라였지만, 시대를 잘못 만났다.

디지털 PEN이 한창이던 2010년대 중반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무섭게 성장하던 때다. 콤팩트 카메라 시장 전체가 스마트폰에 밀려 무너지던 시기. 아무리 예쁘고 잘 만든 PEN이라도, 주머니 속 아이폰과 싸워야 했다. 게다가 올림푸스는 카메라 사업 자체가 어려웠다. 결국 2020년, 올림푸스는 84년간 이어온 카메라 사업을 매각했고, 그 사업부가 OM 시스템으로 독립했다.

OM 시스템이 낸 유일한 PEN은 2021년 E-P7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미국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고, 조용히 지나갔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이름이, 시장의 타이밍과 회사의 사정 때문에 제 실력을 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때가 맞다

지금 컴팩트 카메라 시장은 정반대가 됐다. 스마트폰에 지쳤든, 필름 감성에 끌렸든, 사람들은 다시 전용 카메라를 찾는다. 똑딱이, 즉 컴팩트 카메라의 전성시대다.

PEN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여기다. 작고, 예쁘고, 늘 지니고 다니며 찍는 맛이 있는 카메라. 올림푸스 시절엔 이 자리가 스마트폰에 점령당해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이 자리를 채워줄 카메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OM 시스템은 여러 해 동안 팬들에게 PEN에 대한 피드백을 물어왔고, 2025년 CP+에서 PEN이 카메라 전략의 핵심이며 후속작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부활은 즉흥이 아니라 준비된 응답이다.

무엇이 바뀌었나

새 OM 시스템 PEN은 실용적으로 진화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전자식 뷰파인더(EVF)다. PEN 시리즈 최초로 236만 도트 EVF를 내장했다. EVF가 없어 후면 화면으로만 찍어야 했던 E-P7과 확실히 갈라지는 지점이다. 밝은 야외에서도 눈을 대고 안정적으로 구도를 잡을 수 있다. 여기에 역시 PEN 최초로 방진방적(IPX1) 설계가 들어갔다. 날씨를 덜 가리는 카메라가 됐다.

센서는 2037만 화소 마이크로포서드 라이브 MOS, 트루픽 IX 프로세서, 5축 5.5스톱 손떨림 보정. 121점 크로스타입 위상차 AF에 사람, 고양이, 개 인식과 별하늘 AF까지 갖췄다. 전원 스위치를 오른쪽 상단으로 옮겨 한 손으로 켜고 바로 찍는 조작성도 개선됐다. 다만 영상은 4K 30p까지로, 동영상보다는 사진에 무게가 실린 카메라다.

가격은 바디 999달러, 14-42mm III 키트 1,099달러, 14-42mm와 40-150mm를 더한 더블 렌즈 키트 1,299달러. 실버와 블랙 두 가지 색상. 출시는 2026년 10월 말이다.

아쉬움도 있다

솔직히 짚을 것이 있다. 일부 팬들이 기대한 것은 전설적인 PEN-F의 재해석이었다. 다이얼이 가득한 그 클래식한 명작이 현대 기술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번 PEN은 상대적으로 수수하고 플라스틱 느낌이 나는 E-P7 기반 바디로 나왔다. EVF와 방적이라는 실용적 진화는 분명하지만, 손에 쥐었을 때의 그 클래식한 물성은 PEN-F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다.

같은 시기 파나소닉이 루믹스 L10에서 명작 LX100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되살린 것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도드라진다. 한쪽은 팬들이 그리워하던 얼굴을 그대로 줬고, OM 시스템은 그 대신 실용을 택했다. 다만 PEN은 렌즈 교환식이라 프리미엄 바디를 새로 만드는 부담이 훨씬 크고, 카메라 사업을 다시 세워가는 OM 시스템으로서는 화려함보다 합리적인 부활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즉 이번 PEN은 가장 아름다운 PEN은 아니다. 대신 가장 실용적인 PEN이다. 그 선택이 옳은지는, 지금 컴팩트 카메라를 찾는 사람들이 무엇을 더 원하는지가 답할 것이다.

에디터’s 노트

카메라를 오래 써온 사람으로서, 어떤 이름이 시대를 잘못 만나 묻히는 것을 여러 번 봤다. PEN이 그랬다. 좋은 카메라였지만,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삼키던 시절에 태어나 제 실력을 펴지 못했다.

그런데 물건에도 때가 있다. 필름이 돌아오고, CD가 돌아오고, 컴팩트 카메라가 돌아오는 지금, PEN이 있어야 할 자리가 다시 열렸다. 올림푸스가 이루지 못한 것을, OM 시스템이 다시 꺼내 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번 PEN이 PEN-F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엔, 싸울 시장이 PEN에게 유리하다. 좋은 물건은 좋은 때를 만나면 계속 제 역할을 한다. PEN에게 지금이 바로 그때일지도 모른다.

일부 세부 사양과 시장 반응은 발표 직후 시점 기준이며, 정식 출시 후 실사용 평가로 보완될 수 있습니다.


OM System PEN | OM 시스템 브랜드 첫 렌즈 교환식 PEN | 2026년 10월 말 출시
가격: 바디 $999 · 14-42mm III 키트 $1,099 · 더블 렌즈 키트(14-42mm+40-150mm) $1,299
센서: 2037만 화소 마이크로포서드 라이브 MOS · 트루픽 IX · 5축 5.5스톱 손떨림 보정
뷰파인더: 236만 도트 EVF 내장(PEN 최초) · 방진방적 IPX1(PEN 최초)
AF: 121점 크로스타입 위상차 · 사람/고양이/개 인식 · 별하늘 AF | 영상: 4K 30p
색상: 실버 · 블랙 | 계보: 1959 오리지널 PEN → 2016 PEN-F → 2021 E-P7 → 2026 OM System PEN
참고: PEN-F 재해석을 기대한 팬들에겐 다소 수수한 E-P7 기반 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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